정진우 미니앨범 in my room
“정진우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음악 공간, [In My Room]” “공간. Space. 空間. Room.” 어릴 적, 나는 형과 같은 방을 썼다. ‘당연히’ 나만의 공간도 없었다. 모든 것이 같은 공간 안에 들어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물건이란 개념도 희박했고, 각자의 개성도 갇혀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각자의 방이 생겼고, 각자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형과 나의 방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변하기 시작했다. 방에 들어가면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질 정도로 공간의 색(色) 자체가 달라져 갔다. 내 방에 들어있는 것은 오롯이 나 자체였던 것이다. ‘어떤 사람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그의 방을 자세히 들여다보라.’ 그 공간에 채워져 있는 것은 결국 그의 모든 것이다. 방의 넓고 좁음이나 물건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는 그 방이 오랜 시간을 거쳐 축적한 특유의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다. 시간,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방이 처음 생겼을 때다. 하얗게 빈 공간. 그 순수한 공간에 처음 칠한 색깔이 그 방의 전체적인 ‘톤(tone)’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도 그 ‘처음의 톤’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뮤지션도 마찬가지다. 첫 앨범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공간 안에는 그 신인의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있으니까. “정진우, 남과 다른 그만의 공간.” 사설이 길었다. 하지만 모두 정진우의 데뷔앨범 [In My Room]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그 만큼 그의 공간(Room)은 일반적인 다른 신인과 ‘확연히’ 다르다. 마치 신인이 아닌 것 같은 신인의 분위기랄까? 단지 그가 ‘K팝스타’에 출연했기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번 [In My Room] 속에는 한 순간도 머뭇거리지 않는 확실한 자신만의 색깔, 표현에 어설픔이 없게 만드는 잘 다듬어진 기술, 본인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매력적인 조력자까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K팝스타’에서 처음으로 정진우를 봤을 때는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 중에 편곡 센스는 조금 더 괜찮았던 청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자작곡 ‘위성’을 들었을 때도 그의 보컬 능력에 의구심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In My Room]을 듣는 순간, 그런 생각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내 음악은 이 방향으로 간다.’는 확고한 철학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소속 레이블의 특성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정진우 본인이 자신의 능력을 가장 잘 살리는 활용법을 찾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그 동안 그가 쌓아온 음악 내공이 경연대회가 아닌 실제 필드에서 더욱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만큼 이번 정진우의 음악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의 공간 속 매력적인 조력자, Kei.G” 정진우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신인은 신인이다. 본인이 그리는 방향성에 도움을 줄 조력자가 분명히 필요하다. 그것도 그를 잘 아는 사람이자, 색깔이 통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금상첨화다. 정진우는 행운아다. 같은 소속사에 특출한 프로듀서이자 뮤지션인 케이지(Kei.G)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이들은 ‘널 봐’라는 곡으로 호흡을 맞춰 본 적이 있다.) 케이지는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리듬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재능, 다양한 악기를 적재적소에 믹싱하는 능력, 확고한 레퍼런스를 갖고 음악작업을 하는 신념 등 프로듀서 역량을 이미 인정받고 있을 정도다. 정진우와 케이지. 그야말로 젊고도 특출한 재능을 가진 둘이 만난 셈. 과연 이 둘의 결과물 [In My Room]에는 어떤 색깔이 담겨 있을까? “정진우의 공간, In My Room.” 1. 집에 있을게 (with Villain) (작사 : 정진우 / Villain, 작곡 : Villain / 강대호) 정진우만의 보컬 색깔이 어떤 것인지 친절하게 보여주는 곡이다. 더불어 리듬에 관한 탁월한 감각도 자랑하는 곡으로, ‘위성’이후에 더욱 발전된 보컬 기술을 선보이기도 한다. 'K팝스타' 시절에 비해 목상태도 확실히 좋고, 진성과 가성을 가볍게 넘나들면서 곡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표현력도 뛰어나다. 물론, ‘정진우스러운’ 귀여운 가사도 한껏 돋보인다. 2. B side U (작사 : KEI.G / 정진우, 작곡 : KEI.G) 정진우와 케이지의 장점들이 잘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곡이다. 케이지의 설명처럼 'PBR&B', 'Hiphop', 'Soul'의 요소들이 아주 맛깔스럽게 녹아들어있고, 정진우는 그 복잡한 셈법을 모두 깔끔히 소화해낸다. 케이지가 정교하게 사운드를 다듬으면, 그 위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정진우의 보컬이 매끄럽게 날아다니는 모양새다. 또한 이 곡은 새로운 버스(Verse)를 끼워 넣어 곡의 기승전결을 보다 뚜렷하게 만들어냄으로써, 확실한 타이틀곡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곡이기도 하다. 3. 광신도 (작사 / 작곡 : 정진우) “경험적 사고. 질서. 대안. 총체적 난국. 접촉. 종교. 광신도. 추종자...” 평소에도 쉽게 입에 안올리는 단어들을 아름답게 연결시키는 정진우의 작사/작곡 실력이 돋보이는 곡이다. 이건 윤종신이 보여주는 ‘생활밀착형 가사’하고는 또 다른 범주로 이해할 만하다. 이 입에 붙지 않는 단어들이 멜로디를 얻어 하나의 화음으로 탄생하는 것을 보면, 정진우의 곡쓰기에는 소재의 제한이 없는 느낌마저 든다. 더군다나 이 곡은 순수한 동요의 느낌마저 갖고 있다. 정말 색다른 실험물이다. 4. Leftover (작사 : 정진우, 작곡 : 정진우 / KEI.G) 이 앨범에서 가장 그루브한 곡이다. 또한 정진우가 가진 특별한 톤도 잘 드러난다. 특히 저음에서 고음으로 밀어 올릴 때 나오는 개성있는 목소리는 그루비한 사운드와 더욱 잘 어울린다. 결국 느린 곡과 빠른 곡 모두에서 특별한 자신만의 강점을 발견해낸 것이다. 기타를 중심으로 펑키하게 진행되는 사운드 연출도 탁월하다. 또한 곡 전체를 탄력적으로 만들어내는 확실한 강약조절은 정진우와 케이지의 유연한 조합을 느끼게 해준다. 5. Bonne nuit (작사 / 작곡 : KEI.G) 프랑스어로 ‘잘자’라는 의미를 가진 곡으로, 귀를 즐겁게 해주는 여러 악기의 센스있는 결합과 정진우의 색다른 표현력이 담겨 있다. 또한 앨범에서 가장 느린 곡이면서도 가장 장르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곡이기도 하다. 특히 정진우가 이런 정제된 스타일에도 특화될 수 있는 보컬임을 확인시켜준 것이 아주 큰 성과이며, 다양한 악기를 활용했음에도 곡의 감정선을 해치지 않는 연출력에도 감탄을 금치 않게 된다. 음과 음의 이음새, 악기의 조합이 정말 예쁘다. “정진우의 공간은 계속 확장된다.” 이번 EP [In My Room]를 통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정진우는 리듬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싱어송라이터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듣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이런 능력은 보편적인 곡도 느낌있는 곡으로 탈바꿈시키는 ‘악마의 재능’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지금 현 상태에서 정진우의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그의 ‘공간’에는 그를 더욱 더 완벽하게 만들어줄 것들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순수하기에, 발전가능성도 높다. 이제 시작이다. [In My Room]은 그 첫걸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