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지 Lv.3 `널 봐 (Feat. 정진우)`
신인의 소개글이나 음반 해설지를 쓸 땐 언제나 신중해지고 날카로워졌다. 그것은 마음 속 한 구석에 있는 “그래, 어디 한번 해 봐”라는 삐딱한 심성의 발로일 수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걸 확인하고 몰래 비웃고 싶은 욕망일 수도 있었다. 언제나 예외는 있었다. 제법이라 여겼던 친구들도 있었다. 많진 않았다. 하지만, 느낌은 꽤 자주 들어맞았다. 이미 발표된 곡 ‘지금 여기’와 ‘Shine!’을 들어본 나는, 케이지가 “그 제법”에 해당할 수 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야, 이 친구 음악 괜찮게 하는구나. 뮤지션들을 만나보면 크게 두 부류가 있다. 다른 뮤지션의 음악을 심각할 정도로 듣지 않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음악가들이 있고, 역으로 걱정스럽게 음악을 많이 듣는 음악가들이 있다. 전자의 음악가들은 “자신이 음악이 타인으로부터 영향 받는 게 싫다”고 말하고, 후자의 음악가들은 “자신의 음악이 축적과 학습으로부터 비롯된 산물”임을 수줍게 털어놓는다. 나는 그 어느 쪽이 낫다고 단정하는 게 아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취향과 방향을 용감하게 털어놓는 게 멋져 보인다.”고 생각해 오긴 했다. 그래서인지 스스럼없이 자신의 ‘덕심’을 표출하는 케이지의 용기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케이지는 직접 이 곡에 대한 가이드를 장장 A4 2장에 걸쳐 보내왔다. 정성이다. 가수나 기획사가 평론가나 기자에게 소개글을 맡길 때는 간략한 정보를 넘기는 선에서 갈무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식(Chic)의 대장 나일 로저스(Nile Rodgers), 디 안젤로(D'angelo), 맥스웰(Maxwell), 테빈 캠벨(Tevin Campbell),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위켄드(The Weeknd) 등 묵직한 레퍼런스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사실 저 이름의 무게감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핵심은 그가 음악을 대하는 자세다. “대중적인 팝 뮤직을 잘 세공해내고 싶다”는 고백처럼, 그는 과거를 등한시하지도 않는 것 같고, 트렌드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충실하게 유산을 물려받되, 앞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미래로 한 끝을 열어둔 채 과거를 향해 두 팔을 벌린 태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의 태도다. 진심을 담아, 그의 음악이 나열된 저 거대한 아티스트들과는 아직 거리가 있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와 ‘Shine!’을 들으며 예열되었던 감성이라면, 이 곡에 실망하지 않을 거라는 걸 미리 밝혀두는 바다. 그 결은 앞서 공개된 곡들과 다르다. ‘지금 여기’가 발라드였고, ‘Shine!’는 미디엄 템포의 R&B였다면, ‘널 봐’는 그보다 더한 속도감과 텐션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지점은 정서와 호흡이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만의 ‘정서’를 상실한 채, 보편적인 기준에 자신의 정서를 대입하려는 음악가들을 많이 봐왔다. 편하게 뜰 수는 있겠지만, 그런 음악은 뭔가 작위적이고 쉽게 예측 가능하다. 음원을 열 번 이상 플레이해본 나는 케이지의 곡에서 그런 냄새를 맡지는 못하겠다고 단언할 수 있다. ‘널 봐’는 서바이벌 오디션 ‘K 팝스타’ 출신 가수 정진우의 보컬이 프로그램 이후 처음 등장한 곡이기도 하다. 케이지는 “리듬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그의 보컬 능력을 인정했고, 둘은 같은 트랙 위에서 만나 배회하면서, 둘만의 어떤 ‘화음’을 만들어냈다. 그 조합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들린다. 여러 빈티지한 악기들의 사용은 두 사람의 보컬을 감싸듯, 저 뒤로 빠져 곡의 경관을 완성해낸다. 나는 특히 담백하고 결연하게 끝내는 저 엔딩 부분이 좋다. 자, 이 자리에선 주로 칭찬을 했다. 허나, 이제 ‘Lv. 3’에 이르렀을 뿐이다. 그의 말처럼 만렙을 찍기 위해선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인다. 더 많은 레퍼런스 사이에서 방황해야 할 것이고, 더 많은 장르를 타고 넘어야 할 것이며, 더 많은 혹평을 들어봐야 할 것이고, 더 많은 감성과 접촉해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신인에게 시간만큼 더 좋은 무기는 없다는 말을 믿는다. 더 많은 ‘축적과 학습’이 그를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게 해줄 거라고 믿는다. 현재의 “제법”을 언젠가 “완성”해낼 수 있는 뮤지션. 지금 이 순간도 누구보다 치열하고 진중하게 음악을 대하고 있을 뮤지션. 그래서 아마 휴일 이 시간에도, 스튜디오에서 쪽잠을 자며 고민하고 있을 뮤지션. 그의 ‘저 열정과 덕심’이 훗날 사건을 일으킬 수 있기를, 일을 낼 수 있기를 먼발치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싶다. 글, 이경준 (음악평론가, 음악웹진 ‘이명’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