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사귀와 나비의 음향 (The sound of a leaf and a butterfly)
수진 [잎사귀와 나비의 음향] 작사가, 프로듀서 박창학 거의 매일 뭔가 음악을 들으며 산다고 하는 의미에서, 지금의 내 생활과 수십 년 전의 그것은 그리 다르지 않다. 그때 듣던 음악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즐겨 듣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음악을 듣는 방법이 전혀 달라졌다는 것은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도 없는 주지의 사실일 것이다. 하나둘씩 어렵게 모은 레코드, CD는 집 한 켠을 메운 무거운 짐이 되어 버렸고, 열심히 리핑한 음악 파일을 컴퓨터로 틀던 것도 벌써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려서, 이제는 많은 시간 인터넷의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음악을 찾아서 튼다. 집 밖에서도 휴대전화만 있으면 언제든 듣고 싶은 음악을 바로 바로 들을 수 있다. 좋아하는 노래를 친구에게 들려 주기 위해 앨범을 선물하거나 녹음하거나 파일을 만들거나 하는 일도 거의 없다. 인터넷 상의 주소 링크를 메신저로 전달하기만 하면 되니까. 세상의 ‘거의’ 모든 음악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니 꿈만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느끼는 변화는 더 큰 것인데, 예를 들면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참여한 작업 대부분이 수십 년 전 그때 같으면 실현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는 생각을 매번 한다. 그만큼 음악 한 곡을 만드는 데에는 큰 돈이 필요했고, 발표하는 길도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쉽게 음악을 만들고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많은 음악들이 청자의 귀에 닿지 못하고 어딘가의 서버 안에 음악 파일로 쌓여가기만 할 뿐인 건 아닐까? 마치 벽 하나를 가득 메운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내 CD와 레코드들처럼 말이다. 예전 같으면 찾아 들을 길이 없었던 수많은 과거의 음악들, 매일 발표되는 수많은 새 노래들. 그 속에서 내가 만든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해 줄 청자를 만난다는 것은 점점 비현실적인 일이 되어 간다.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음악이 분명 어딘가에서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걸 찾아내지 못해서 그냥 지나쳐 보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안타까움도 쌓여가기만 한다. 나 자신 또한 현재보다는 과거의 음악에 더 경도되어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가끔 요즘 음악은 들을 게 없다는 지인들을 만나면 늘 입 아픈 줄 모르고 얘기한다. 그건 단지 그 음악들의 존재를 당신이 알지 못하기 때문인 거라고. 진심을 담은 음악을 만들며 고민하고 있는 젊은 음악가들은 어쩌면 우리 때보다 더 많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물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음악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웬만한 열심과 관심으로 찾아 듣지 않는 한, 그 음악들은 내가 모르는 곳에서 발표되고 있고, 아무도 그걸 내게 먼저 알려 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저 모르고 지나칠 뿐, 지금도 끊임없이 음악은 만들어지고 또 발표되고 있다는 것을 이런 자리를 빌어서라도 꼭 한 번 더, 아니 될 수 있으면 여러 번 힘 주어 얘기하고 싶다. 우연이든 아니든 지금 당신과 어렵게 조우한 수진의 음악도 이와 같은 젊은 고민의 결과의 하나다. 또 이 음악은 그들의 고민이 단지 말을 담아 노래하는 ‘가요곡’으로서나 미디어를 누비는 히트곡으로서의 완성뿐만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만들어 내는 데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간단치 않은 길을 거쳐 당신과 만나게 된 수진의 음악에 귀 기울여 주시기 바란다. 그의 음악이 당신을 이끄는 대로, 한여름의 시냇가에 앉아 있는 것처럼, 한적한 숲길을 혼자 걷는 것처럼, 고요한 바닷속을 유영하는 것처럼, 말과 생각을 잠시 떠나 마음을 비우고 이 앨범에 담긴 소리들을 들어 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음악가들이 지금도 부지런히 만들어 내고 있는, 당신이 아직 모르는 음악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면 좋겠다. 이제부터의 우리 음악을 책임질 사람들은 그들이니까 말이다. [CREDIT] Executive Producer 김수진, 풀풀 Producer 김수진 Composed, Arranged, Sound design by 김수진 Mixing, Mastering 윤정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