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es In Heaven
추억의 한 페이지로 우리를 안내하는 감동의 목소리 JK 김동욱 2.5집 지난 2002년 가요계에 등장한 JK 김동욱은 신세대 음악 팬들에게 ‘소울’에 대해 명쾌한 정의를 내려주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그의 노래는 단순히 기교를 바탕으로 한 겉치레가 아닌 ‘영혼의 울림’이라는 것을 제시해주었다. 노래를 잘하는 가수들은 많지만, 진정으로 혼을 담아 노래하는 가수가 드문 가요계에서 그의 존재는 보석 같은 것이었다. 김동욱은 2002년 데뷔 앨범 을 통해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들었던 흑인들의 삶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소울 음악을 선보였다. 웬만한 수련과 내공 없이는 시도조차도 힘든 소울을 그는 풍부한 가창력과 매혹적인 보이스컬러를 통해 건져 올렸다. 1960년대 말 미국에서 흑인들이 인권 운동을 부르짖을 때 자신들의 자유를 찾기 위해 소리치던 외침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정형화된 보컬 창법이 아닌 ‘자유’, 그 자체였다. 비록 일각에서는 임재범과의 비슷한 보컬 스타일 때문에 ‘임재범과 닮은 가수’라고 하거나, 매스컴 노출을 최대한 자제한 신비주의 마케팅 방식으로 인해 ‘얼굴 없는 가수’라는 카피문구로 김동욱을 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003년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을 통해 김동욱은 일부에서의 색안경 낀 시선을 완전히 벗겨내는데 성공했다. 다양하고 폭넓은 음악 스케일을 갖춘 국내.외 뮤지션들을 대거 초대하여 감미롭고 애절한 소울 발라드 위주로 앨범 전체를 꾸몄던 데뷔작의 소리샘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장르 탐험을 시작한 것이다. 보사노바와 랩, 애시드 재즈, 댄스 음악 등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음악에 대한 시도를 김동욱은 매우 뛰어나게 잘 소화해냈다. 김동욱이 2집에서 보여줬던 장르의 다양화는 사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장계현과 템페스트라는 팀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수많은 음악을 접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들을 안다면 JK 김동욱이 2.5집 리메이크 앨범을 내놓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즐겨듣고 영향을 받아왔던 가수들의 노래들을 두 장의 앨범에 각각 가요와 팝으로 나눠 재해석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된 국내 외 가수들의 명곡들을 부른 점이다. 현재진행형 음악들도 좋지만, 옛날 음악들에서 배울 것이 많다는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 정신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트랙 ‘독백’에서 김동욱이 “그 어린 날 잠든 나를 꿈속에서 흥얼거리게 했던 아버지께서 들려주던 LP에서, 그리고 내 사랑을 일깨우고 나를 노래할 수 있게 해준 아주 오래된 선물들에서..... 나는 내 나이 서른에 이 모든 걸 추억으로 담는다”라고 읊조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급하게 달려왔던 그 동안의 인생을 정리하고 조금씩 템포를 늦추며 가기 시작할 무렵인 서른을 맞아 김동욱은 선배들의 기념비적인 노래들을 ‘여유와 편안함’을 내세우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앨범의 주제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대표적이다.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하고 애조 띤 목소리는 너무나도 젊은 서른 즈음에 생을 마감한 김광석의 슬프면서도 맑은 음색과 서로 바통터치를 하고 잇다. 영화 을 통해 다시금 우리 곁으로 다가온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는 가벼우면서도 고급스런 보사노바 스타일로 바뀌었고, 김현식의 노래 ‘내 사랑 내 곁에’는 스탠더드 재즈의 진수를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1990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여가수 장덕이 작곡하여 이은하에게 준 노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김동욱의 소울 창법이 빛을 발하는 곡이다. 역시 김광석의 ‘사랑이란 이유로’, ‘흐린 가을 하늘엔 편지를 써’, ‘이등병의 편지’,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 김현식의 ‘비처럼음악처럼’ 등도 재즈와 스탠더드 팝의 아련함과 서정에 기대어 있다. 김동욱이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 획을 그은 선배들에게만 오마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타임머신을 타고 아버지 세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지난 1995년 세상을 떠난 색소폰 연주가이자 작곡가인 길옥윤의 명곡 ‘이별’, 1970년대 전성기를 누린 김정호의 불후의 히트곡 ‘하얀 나비’ 등을 리메이크 한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뮤지션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이다. 팝 CD에서도 김동욱은 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위대한 아티스트들의 노래를 그만의 색깔로 부르고 있다. 전설적인 흑인 재즈 아티스트 루이 암스트롱의 불멸의 명곡 ‘What A Wonderful World’,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It's Now Or Never’ 등이 때론 진지하게, 때론 장난기 넘치듯 유쾌하게 부르고 있다. 이미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곡들이라서 부담이 가고, 신경이 쓰일 법도 하지만, 김동욱은 오히려 더욱 대담하게 거장들의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존 레논하면 떠오르는 평화의 노래 ‘Imagine’, 지난 1991년 세상을 떠난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가 이끌었던 그룹 퀸의 히트곡 ‘Too Much Love Will Kill You’, 록 기타의 거장 지미 헨드릭스의 ‘Little Wing’ 등은 김동욱만의 느낌으로 재탄생했다. 단순한 모방이 아닌 자신만의 목소리로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다. 추억을 회상하고 정리하는 것은 새로운 미래로 도약하기 위한 과정에서 꼭 필요하다. 무턱대고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면 언젠가는 지치고 쓰러진다. 그래서 과거를 반추해보며 또다시 재충전하고 떠나야만 한다. 김동욱의 2.5집은 바로 더 나은 음악 항로를 떠나기 위해 잠시 쉬며 활력을 찾기 위한 정거장이다.